2024-04-16 13:57
Henri Le Sidaner
여름의 빛
천사들을 위하여 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지. 언덕 사이마다 여름과 함께 솟아오르는 소리 없이 맴도는 말을 준비하지. 은백양의 송곳니 같은 나뭇잎을 깔고 그 위로 붉은 우유와 주먹보다 커다랗게 자라난 떠도는 돌을 놓고 식칼과 끓는 기름을, 천사들을 위하여 검은 장미의 피를 입술에 묻히고서 여름의 빛과 고통과 소금의 맛을 준비하지. 흐르지 않는 물과 진흥빛 화관을, 노란 불꽃의 노래와 내가 들었던 마지막 낱말을. 그리고 그것들을 벼랑처럼 찧아 놓고 함께 나눌 신비주의자의 병든 육신을 준비하지. 그리고 붉은 저녁이 오기를 기다리지. 눈을 감고 병들어 굽은 손을 내려놓으면 오, 누군가 초록 유리 조각들 밟으며 다가오는 소리, 어제저녁 찾아왔던 죽은 동생의 말을 입술에 옮기면서.
시인, 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