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5 12:26
단 한 번의 전시가 보는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제게 2013년 리움에서 있었던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 선생의 개인전이 그렇습니다.
이 전시의 Seascapes 시리즈가 제 인생을 흔들었습니다. 1:1 비율의 하늘과 바다사이로 광대한 시간이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순간을 그 날 보았습니다. 문명의 흔적이 사라진 태고의 바다가 제 눈 앞에서 흐릅니다. 순간의 포착을 넘어 막대한 순간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거대한 흐름이 된 ‘시간’이 사진 위에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충격은 극장으로 이어집니다. 한 편의 영화를 한 장의 사진으로 종결한 텅 빈 화면은 아직 생생합니다. 초당 24프레임 사진으로 구성된 영화 속 모든 장면이 중첩된 결과, 우리를 울고, 웃겼던 장면은 사라지고, 빛으로 가득한 화면만 남았습니다. 카메라만 잡을 수 있는 빈 화면이 실은 무수한 의미로 차 있다는 역설에 전시장을 쉽사리 떠나지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사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