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9 12:59
명성황후4 사건 직후 일본 정계의 요인과 외교관, 기쿠치 겐죠[菊池謙讓] 등 언론인은 명성황후가 부패의 화신으로서 조선을 망친 ‘궁중의 암탉’이며, 이 사건을 흥선대원군과 조선군 훈련대의 범죄로 덮어 씌웠다. 미우라 공사는 ‘흥선대원군의 요청에 응하여 군대를 동원하였으나 궁궐에 도착해 보니 사건은 일단락된 뒤였다. 이 사건과 일본 군민은 무관하다’하였다. Ja등 일본의 영자신문은 이 사건을 ‘중세의 야만왕조’인 조선 궁중의 암투에서 빚어진 것으로 호도하였다. 사실의 왜곡은 일제하에도 지속되었다.명성황후를 직접 대면했던 서양 외교관과 혹은 비숍 같은 영국인 여행가의 기록은 일본 측과 달리 명성황후에 대한 긍정적 서술이 적지 않다. 명성황후는 궁중 여성으로서는 동양의 고전에 밝았고, 서양의 종교와 풍속, 정치와 의회제도, 여성의이해를 바탕으로 자신과 왕실, 군주와 국가의 활로를 추구하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국모’이자 근대형의 여성정치가로서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2
回覆
0
轉發

回覆

轉發

24小時粉絲增長

無資料

互動率

(讚 + 回覆 + 轉發) / 粉絲數
0.79%

回覆 (BETA)

最先回覆的內容
發文後用戶內容

© 2025 Threadser.net. 版權所有。

Threadser.net 與 Meta Platforms, Inc. 無關,未經其認可、贊助或特別批准。

Threadser.net 也不與 Meta 的"Threads" 產品存在任何關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