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3 07:03
비가 그치자, 다들 문득 서로의 눈동자를 보게 된다. 표식이 거의 사라진 서로의 얼굴이 낯설고도 아프다. 어떤 이는 흐려진 기호를 붙들고 흐느끼고, 또 다른 이는 기호가 지워진 해방감에 기묘하게 떨린다.
도시 한복판에서 한 사람이 조용히 말한다.
“이제야 조금, 우리가 얼마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이는 것 같아.”
아직 제 자리를 못 찾은 물웅덩이 속에서 잔상들이 어지럽게 일렁거린다. 빗방울에 씻긴 표식의 흔적은 희미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두던 벽이 조금씩 갈라지는 걸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이 도시에선 표식 없이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 목소리는 바람에 잦아들며 도시 전체를 가볍게 두드린다. 흠뻑 젖은 밤공기는 사람들을 온통 울컥한 마음으로 적시고, 그들의 시선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을 향한다. 표식 없는 그곳, 아직 낯설지만 의외로 따뜻한 길 끝을 꿈꾸며, 도시 사람들은 오늘도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