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5 08:32
‘죽어라 죽어라 하니까 오히려 살아야겠어‘
안 좋은 생각을 실행에 옮겼었다.
실행한 일 때문에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엄마와 절연하는 과정도 거쳤다.
엄마는 어릴 때 부터 나랑 싸우면 입버릇 처럼
’연 끊자‘ ’엄마 죽을거야‘ 를 달고 살았다.
그럼 항상 언제나 미안하다고 비는 건 나의 몫 이었다.
대학을 합격 했지만 갈 수 없었다.
엄마는 사채를 끌어서 나를 대학 보내는 대신
망해가는 가게 재료비로 쓰기 위해 썼다.
내가 회사에 입사를 했다.
엄마는 내 카드내역서에 40만원이 찍힌 걸 보고 전화를 했다.
돈 쓰지말고 빨리 모으라고 했다.
그래야 엄마가 가게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같이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식 없는 결혼을 했다.
일가 친척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와 엄마를 위한 결정이었다.
대신 양가 부모님과 단촐하게 가족여행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식구’ 들 밥을 줘야 하는데
어떻게 가느냐며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