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8 17:28
수소 한 마리가 있었고 그 속엔 스콜이 지나간 마을이 있었다. 집들의 위치에 따라 햇볕은 달랐지만 여전히 마을엔 수소가 있었고 배고픔이 있었다
- <지옥에서 듣는 빗소리> 부분, 허연 2014
집들의 위치에 따라 햇볕이 다르다는 말에 무릎을 탁 친다. 님들 집은 어떤지 몰라도 가난한 우리집에는 볕 드는 방이 정해져 있거덩. 그 방에는 옷과 율마가 산다. 나는 죽은 자의 방처럼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벌레처럼 웅크린 채 잠이 든다.
아침마다 산 자들의 방에서 영혼을 갈아 끼우고 투쟁의 공간으로 돌아가고 해가 지면 관에 들듯 볕이 들지 않는 방에 몸을 뉜다. 선풍기가 만드는 죽은 바람만 순환하는 공간. 안식에 든 자들을 위한 방.
언젠가 나는 ‘햇살은 평등하게 내리쬔다. 그러니까 나무들은 비탈진 곳에서도 잘 자란다.’라고 썼다. 글에는 시선이 담기는 법. 아직 나는 밝게 웃는 자들의 그늘을 헤아리기에는 한참 더디다. 작은 것들의 신이 정말 있다면 굽어 살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