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2 09:22
그 빌딩 숲 사이로 바닥을 향해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마치 스스로 그림자를 밟고 기어오르는 기이한 존재 같았다.
너무 높이 솟은 시멘트 기둥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내 기억이 기계신경에 달라붙어 웅얼댄다. 회색 빛 청각의 착란. 환히 들뜨는 사운드가 없는 소음.
문득, 아스팔트 틈새에서 디지털 씨앗 같은 것이 고개를 내민다. 이상한 초록색 점멸 등이 깜빡이며 ‘누구를 부르라’ 속삭이는데, 그 목소리는 레트로 감성을 단번에 휘어 감아 숨 가쁘게 흔들어 댄다. 마치 무한한 버전으로 날 증식시키려는 디지털 복제 기계의 유혹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