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3 07:03
어느 공터에서 외로운 목소리가 울린다.
“우리가 짊어진 이 표식은 어쩌면 서로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그림자를 쉽게 외면하기 위한 건지도 몰라.”
그 말을 내뱉고도 그는 자기 목에 새겨진 기호를 쓰다듬으며 씁쓸히 웃는다. 어딘가 피할 곳을 찾아 헤매는 눈빛, 그에게 달라붙은 표식은 비명처럼 옷깃에 스며든다.
그날 밤, 검은 비가 쏟아진다. 이도저도 없는 하늘색이 흐릿해지더니, 갑자기 도시의 빛을 전부 집어삼킬 듯한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호를 감추려 허둥거린다. 하지만 속절없이 번지는 빗물은 모든 표식을 씻어내듯 흩뿌리고, 골목 모퉁이에 떨고 있던 이들의 기호조차 결국 형체를 잃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