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4 18:58
혼자 산에 다니면서 별별 사람을 다 봤다. 나는 산에 놀러 다닌 것이 아니라 수행의 일환으로 다닌 것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산을 뛰다가 바위가 보이면 앉아서 명상을 하고 다시 뛰곤 했다. 산을 뛰면서 산 아래에서 겪은 설움과 고통을 모두 짜내었었다. 산은 내게 쉴 곳이었다. 언젠가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보겠다고 한 겨울에 갔던 적이 있다. 하필이면 대설 주의보가 떨어져서 그날은 중청봉 산장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산장은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산지기 아저씨가 2층 천장이 무너져서 공사한다고 해 놨는데 두 명만 가서 잘 수 있는데 거기서 자겠냐고 했다. 2층에 올라갔더니 이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머리는 덥수룩하고 수염도 무성했다. 눈은 초점이 없는 듯 먼 산을 보는 듯했다. 앞에는 이미 소주 병이 몇 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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